[책]이백, 두보를 만나다 * Book

1) 이백과 두보가 동시대인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ㅇㅁㅇ
제목 보고 '헐..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내가 바보인 거였어.

2) 나도 이백의 시가 더 좋다. 두보는... 읽으려니 힘들어.

p.40

당나라 황실이 도교를 존숭한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다. 도교 교단 지도자와 천자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도교 지도자는 조정에 자주 초빙 받아 관직이나 포상을 받았으며, 때로는 천자가 도관을 방문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관계는 물론 천자의 신앙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의 피지배층 대다수는 농민이었고, 일반 도사의 일상 활동은 농민을 상대로 부적을 팔거나 기괴한 가지(加持) 기도를 해 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농민의 생활상의 불만이나 고통을 해소하고, 권력에 대한 반항적인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마비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거꾸로 일단 종교 교단이 농민을 조직하여 권력과 대결하면 가공할 파괴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후한을 붕괴로 이끈 황건의 난, 혹은 동진을 뒤흔든 손은의 난 같은 역사적 사례로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권력의 입장에서 교단 지도자를 장악해 두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으며, 이 일은 정부 조직을 통해서가 아니라 천자 자신이 직접 담당하는 최고의 통치 행위였다.

 

p.77

당시 중국에서 천자의 권력은 극히 큰 것이었다. 전세계(물론 당시의 중국인에게 알려져 있는 범위에서)의 힘이 천자의 한 몸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ᄄᆞ라서 천자의 인물 됨됨이가 어떠한가는 다른 정체(政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정치와 사회의 정황에 영향을 미친다. ‘천자의 인물을 논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역량은 물론이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성실하고 유능한 신하를 좌우에 두고 그 의견을 계속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 억제력이다. 조직이라는 것은 보통 건전하게 운영된다면 당연히 더 유능한 자가 위로 올라가는 법이다. 다만 유능하면 할수록 그보다 위에 있는 자의 입장에서는 가까이하기 거북하고 다루기 어려우며 방해물로 느껴져 때로는 질투, 증오, 혹은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명군(名君)이란 인간으로서의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하고, 자신의 주변에까지 올라오는 유능한 신하들의 존재를 참아내면서 그 능력을 각기 마음껏 발휘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천자에게는 손짓 한 번으로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신하의 직위를 박탈하는 것은 물론, 목숨을 빼앗는 일조차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자유가 부여되어 있다. 이러한 절대적인 권력과 무한한 자유를 부여받고 있으면서도, 단지 스스로의 인내에 의해 그것을 억제하며 10, 20년에 걸쳐 늘 자신을 누르고 신하의 의견에 따른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라. 물론 당사자 자신이 우수하고 유능한 인물이며, 즉위 이전에 자타 공히 인정하는 큰 업적을 이룬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고래로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천자가 많지 않은 것은 그런 까닭이며, 또한 종종 명군이 오랜 치세의 말년에 이르러 갑자기 암군(暗君)으로 바뀌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누르고 또 누르고, 참고 또 참기를 거듭해 오다가 마침내 억제할 수가 없게 되어, 자신에게 오랫동안 쓴 소리를 해 온 성실하고 유능한 신하를 추방하고 좀 더 붙임성이 좋은 신하를 주위에 두게 되는 것이다. 새로 뽑힌 신하는 천자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치는 급속히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명군으로 초지일관하는 것은 거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하려고 생각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모두 참고 또 참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태종

(당의 이세민)은 그럭저럭 이를 끝까지 관철시킨,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되는 중국 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p.81

당 현종의 정치를 도운 재상은 요숭, 송경, 장가정, 장열, 이원굉, 두섬, 한휴, 장구령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진실, 성실, 유능, 강직의 화신과 같은 유능한 관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현종의 좌우에 있으면서 현종을 엄격하게 체크하고 있던 동안, 개원의 치는 확실히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수용해 나가는 것이 현종에게 얼마나 고통이었는지는 이 사람들의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재상도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 사람을 파면하더라도 현종은 다시 또 성실, 유능, 강직한 재상을 등용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정치에 대한 현종의 성실성이며, 이 성실성은 대부분 젊은 현종의 체력에 의해 간신히 지탱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한휴가 재상이었을 무렵의 일이다. 한휴는 현종의 정치에 대한 태도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그때마다 엄격하고 용서없이 지적하면서 현종이 항복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날 한휴가 퇴청한 뒤, 현종은 침울한 표정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좌우에 있는 사람이 한휴가 재상이 된 이래 폐하는 무척 야위셨습니다하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고 현종은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야윈 만큼 인민이 살쪘을 것이다하고 현종은 한숨을 쉬었다. ‘개원 전성의 나날들이 누린 안정과 번영은, 하려고만 하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는 천자의 뺨이 홀쭉해질 정도의 극기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보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현종이 더는 참을 수 없는 때가 왔다. 개원 24(736), 현종 치세 25년째 되던 해에 강직한 재상으로는 마지막이었던 장구령이 파면되고 이림보가 그를 대신했다. 이후 이림보는 천보 11년 병사할 때까지 17년 동안 조정의 전권을 장악했다. 그가 이렇게도 오랫동안 재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은 극히 간단했다. 그는 단지 현종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들려주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 왕조는 서서히, 마지막에는 안사의 난을 거쳐 급속히 무너져 내리게 된다.


P.314

두보의 절구

 

왕세정이 변체(變體)라 하고 호응린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극언했듯이, 두보의 절구는 그다지 잘된 작품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 명나라 양신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로는 대구에 구애 받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전고(典故:전례와 고사)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대구에 구애 받으면 미완성 율시가 나올 뿐 절구의 체()는 이루어지지 않고, 전고에 매몰되면 이는 유생의 책 보따리일 뿐 성정(性情)이 부족하게 된다.”

첫 번째 지적, 즉 두보의 절구는 미완성 율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호응린도 뜻밖에 같은 이야기를 한다.

두보는 율을 가지고 절을 만들어싿. 예를 들어 창함서령천추설, 문박동오만리선 같은 구는 원래 칠율의 장어인데, 그것을 가지고 절구를 짓고 있다. 이는 비단이나 명주를 잡아당겨 반으로 찢은 거나 마찬가지다.”

형식사응로만 본다면 절구는 분명히 율시를 반으로 나눈 것이다. 그러나 율시와 절구는 전연 느낌이 다르다. 자연히 소재와 작자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두보는 절구를 지으면서 율시의 소재를 사용하고 율시를 대하는 태도로 일관하여, 반으로 싹둑 잘린 율시를 지은 데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절구 4여기서 호응린이 예로 드는 절구를 읽어보자. 이는 두보의 절구치고는 제법 읽히고 있는 모양이다.

 

절구 4중 제3

 

두 마리 휘파람새는 푸른 빛 감도는 버드나무에 울고,

한 무리 흰 해오라기는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창으로 보이는 것은 서쪽 봉우리 천년설,

문 앞에 머무는 것은 동으로 멀리 떠나가는 배

 

보시는 대로 앞 연과 뒤 연이 모두 멋진 대구를 이루고 있다. 독립한 대구로서 본다면 이는 자체로 대단히 멋진 것이며 불평을 할 도리가 없다. 다만 그 멋진 대구를 두 개 열거하고는 이로써 절구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조금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두 연은 오히려 칠언율시의 가운데 두 연에 어울린다. 그 앞뒤에 한 연씩을 더한다면 훌륭한 칠율이 된다. 이것만 가지고는 칠율의 가운데 부분을 떼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 든다. 호응린이 비단이나 명주를 잡아당겨 찢은 것이라고 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결코 싸구려의 질 낮은 천이 아니다. 분명히 비단이고 명주인데 아깝게도 치수가 모자라서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다.

원래 두보의 시는 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하지 않으면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고나 오배의 장편과 같이 자세한 전후 사정을 모두 서술하여 극명하게 사태를 묘사해 나가는 시에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절구라는 시체는 하고 싶은 말의 정점이 되는 부분만을 예리하게 잘라내어 노래하고 나머지는 모두 여운으로 남겨서 읽는 이의 상상에 맡겨야 하는 형식이다.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시에 팽창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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