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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학교 교육에서의 통섭의 필요성>-최재천
저는 하버드나 미시간처럼 미국의 명문대학에서만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수준이 높은 학생들을 가르친 셈이죠. 그런데 그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우리 아이들보다 좋으냐. 절대로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하버드에서 생태학을 가르칠 때 2차 방정식만 풀어도 못 따라 오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핀잔도 주고, 한 시간 내내 2차 방정식을 가르친 적도 있어요. 미분방정식은 말할 것도 없죠. 그래서 학기 초 첫 시간에 ‘생태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하면서 일부러 미분방정식 문제를 하나씩 냅니다. 그러면 강의실에서 땅이 꺼지도록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학기 중간쯤 되면 제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간단한 미분방정식은 다 풉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도서관에 가서 미분방정식 책을 펴놓고 공부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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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문과 학생을 물리학과 교실에 앉혀 놓고 양자역학 원서를 주면 한쪽도 못 읽습니다. 이게 우리 교육의 현실입니다. 실제로 미국 대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복잡한 수학 분제를 내주면,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이 뭐고,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서 따라가야 하는지를 알아요. 왜? 고등학교 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기를 갖추고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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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대학에서 전공을 자유롭게 올며 다닙니다. 제가 하버드에서 가르칠 때 전공을 다섯 번 바꾸는 녀석도 봤어요. 비슷한 학과가 아니라 문과, 이과, 예술학과를 옮겨 다니더라고요.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 아이들에게 이미 그런 소양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죠.
p.88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라>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화가인 폴 호건은 상상부터 하라고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실재를 보면 어떻게 새로운 무엇을 찾을 수 있겠는가?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p.109
서양의 학교 교육에는 이런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 같은 것이 빠져 있습니다. 왜? 그건 교육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종교가 맡아 하니까요. 교육은 종교의 사업이고 종교가 사람들을 교육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의 자식이기에 하느님의 본성을 드러내 보이려면 종교가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동양에서는 교육이 하느님의 사업이 아니라 패밀리 비드니스였지만,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교육이 퍼블릭 비즈니스였던 겁니다. 그래서 국가 돈을 걷어서 국민을 교육하는 의무교육도 서양에서 먼저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동양의 유교적 사고로는 부모가 자기 자식을 교육해야 하거든요.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자기 자식을 출세시키려는 부모는 스스로 알아서 교육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그럼, 국가는 뭘 하느냐? 과거시험과 같은 선발제도, 평가제도만 운용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교육하고, 국가는 평가제도만 운용해서 시험을 보게 하고 똑똑한 인재를 뽑아서 관리로 임용만 하면 된다는 식이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과거제도가 바로 그런 개념입니다.
-국가가 직접 교육을 담당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군요.
없었죠. 물론 성균관 같은 기관이 있었지만, 이미 부모가 충분히 교육해서 과거에 합격한 젊은이들을 국가가 필요에 따라 더욱 양성하자는 의도에서 설립된 기관이니까 서양식 교육기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죠. 그러니까, 국가는 백성을 교육하기보다는 이미 교육된 사람을 뽑아서 관리를 등용하여 쓰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참 무섭게도 그런 관념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대다수 부모에게 자녀 교육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사고가 팽배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할 때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p.286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 자연이 굉장히 낯섭니다. 그래서 자연을 만나러 가도 그저 술이나 마시고 고기나 구워먹는 정도로 놀다가 돌아오지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쾌락보다는 사랑의 관계라면 좋을 텐데, 사랑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자기가 원하는 것만 얻고 돌아오면 그만이라는 식이 되어버린 겁니다.
저는 우리가 숲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니겠어요? 뭔가를 요구하고 얻으려고 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고 아끼면 되듯이, 자연 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죠. 거닐고, 바라보고, 쓰다듬고, 물을 주면서 친구처럼 아껴주면 되지 않겠어요? 숲에 레저 시설까지 만들어가면서 모두 파괴해야 할까요?
p.310
동기부여는 무시한 채 학생들에게 ‘필독서 100권 목록’을 가져다 안기고, 교수들 자신도 읽지 않은 책들을 읽으라고 강요한다면, 순진한 학생들은 시키는 대로 그런 책들을 사다가 몇 쪽 떠들쳐 보겠지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책을 읽으며 자란 세대가 아니어서 책을 보면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요. 어휘력의 빈곤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개념을 모르면 독서가 안 되잖아요. 모르는 말이 하나쯤 나오면 참았다가, 두 개쯤 나오면 짜증을 내다가, 세 개째 나오면 아예 책을 집어던집니다.
고전교육이 왜 강제되어야 하느냐. 교육은 절대로 민주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신세대든, 구세대든 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어휘나 개념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만나게 하는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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